2025.10.02.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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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작성자)
25.10.02. 03:23
6. 그녀를 친 타타대우 프리마의 운전사는 전날 밤부터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부산에서 서울까지 총 7시간 가까이 운전석에만 앉아 있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의식을 잃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1차선에서 2차선으로 핸들을 꺾으며 잠에 들었을 때 고개를 완전히 꺾어 클락션에 이마를 박았다고 한다. 빠아아암- 하는 소리는 너무 뒤늦게야, 고대 그리스 비극의 불길한 예언처럼 그녀의 귀에 들려왔을 것이다. 기아 모닝의 작은 차체는 중형 화물차의 충돌을 버텨낼 만큼 튼튼하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성수대교의 난간과 기아 모닝의 관계성 역시 그러했다. 계속된 호우로 인해 수색은 이틀 후에야 시작되었다. 한강수난구조대는 박살난 차체와 차 트렁크에 들었던 우산, 세차 용품 따위의 잡동사니들은 하나 둘씩 찾아냈지만, 정작 그녀만큼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찌그러진 차체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생존 확률은 희박하다고 했다.
익명 1(작성자)
25.10.02. 03:23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수색을 중지할 명분은 되지 못했기에 구조대원들은 계속해서 거친 물살을 헤쳤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직까지 못 찾았다지 않아.” 결국 그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녀를 추모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적게나마 품었던 희망은 바람 부는 날의 빨래처럼 건조해 까슬해졌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익명 1(작성자)
25.10.02. 03:23
7. 이제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강은 서해로 흐른다. 너의 시신이 계속 어디론가 흘러갔다면, 아마도 서해 바다에 닿았을 것이다. 바닷가의 노을 사진을 보고 숨이 멎을 듯 좋아했던 네가, 언젠가 너와 내가 은퇴하면 가서 살자고 했던 신두리 해안의 모래언덕. 그 근처의 작은 마을에 나는 당초의 예정보다 30년 정도 빨리 집을 얻었다. 불어터진 너라도 언젠가 해안가에 쓸려온다면, 네가 나와 함께 죽고자 했던 곳에 너를 묻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해안에는 밍크고래가 산다. 심심찮게 고래들의 사체가 부안군의, 백령도의, 또 아직 이름도 받지 못한 섬들의 해변에 떠밀려온다. 나는 그 중 하나가 어쩌면 너의 시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익명 1(작성자)
25.10.02. 03:24
2년간 바닷물과 물고기, 또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같은 것들에 헤집어진 너. 고래와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부풀어오른 너. 새끼 밍크고래의 크기는 약 2미터 내외다. 너는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으니까, 아예 비현실적인 가정만은 아니다. 어쩌면 발견되지 않은 새끼고래들의 사체들 중 하나는 정말로 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의 오류에 봉착한다. 너는 고래가 아니다. 너의 몸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너는 테라리움이다. 안에 식물과 자갈을 넣으면, 유리병 자체가 그에 맞게 커지는 조금 이상한 테라리움. 나의 커다란 달팽이. 네가 혐오스러웠든 숭고하였든 그 이전에 너는 나의 것이었기에 나는 너와 보냈던 밤들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익명 1(작성자)
25.10.02. 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