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자작나무들을 북방마을 사람들로 볼 수 있지 않나요? 여기 분석서에선 이렇게 해석 되어있는데요? 그럼 단정할 수 없는 선지 아닌가요? 아니면 그 선생님이 틀린 건가요? 희망을 추구하는 거랑 희망적인 상황인 거랑 뭐가 달라요? 어쨌든 둘 다 희망적인 거잖아요. 선생님이 맨날 같은 말이냐 다른 말이냐 하시는데 둘 다 희망적이니까 같은 말 아닌가요? 이게 아닌 거면 지금까지 쌤이 하셨던 같은 말이라는 건 너무 사후적이고 억지로 끼워맞추는 거 아닌가요? 문학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셨는데 어떻게 같은 말로 퉁치고 넘어가시는 건가요? 문장을 문장단위로 안 보고 덩어리로 보신 거 아닌가요? 그리고 희망이 어떻게 부정적인 상황에서만 쓰일 수 있나요 수학 만점 받은 형이라고 해도 더 높은 표점을 받고 싶을 수 있지 않나요? 근데 이번 일상 문제도 그렇고 점점 문제가 짜쳐가는데 애초에 선지고 뭐고 지문을 똑바로 시간들여 읽으면 선지 대충 봐도 어색한 단어가 딱 하고 튀지 않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완벽하게 지문 을 외우고 들어갈까요? 어? 그럼 그냥 EBS 시들 다 외우고 시험장 가면 아예 안 읽어서 시간 단축할 수 있지 않나요? 쌤이 인간의 감정은 이중적일 수 있댔는데 선지 관계성 써서 반댓말이라고 하는 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너무 사후적인 사교육 스킬같아요. 설의법에서 의문을 제기한다는 게 선지모순이라 하셨는데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한다고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아버지가 카라멜을 준 게 왜 미안함이죠? 이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요? 선생님은 꽃구름에서 경외감이 느껴지시나요? 근데 단정할 수 없는 선지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수능은 누구에게나 명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컨텍스트가 판단 1순위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분명 문제에서 (가)와 (나)를 읽고 물음에 답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텍스트가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 아닌가요? 어떻게 문학에 기조변화가 없을 수 있나요? 저번 수능 보니까 표현상 특징 문제에 방어적 선지 없던데요? 그리고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고 관찰한 대상을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라는 게 방어적이라 하셨는데 천하의 지도라는 것을 관찰하고 그거에 대한 인식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상을 새롭게 인식했다는 점에서 천하의 지도라는 새로운 의미를 만든 거 아닌가요? 그걸 가지고 지도 발명 얘기라 하는 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