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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개가 죽었다

1달 전

모두의선생님 다운로드하기

개가 죽었다

2026.04.11. 12:42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걔도 나도 조그만 아기였다 그 조그만 강아지가 처음 내 무릎 위에 누웠는데 당시 8살짜리의 물렁한 몸뚱아리에겐 그게 그렇게도 무거웠다 하지만 행복했다 우리 집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엔 강아지용 플라스틱 울타리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와 형은 매일 밤 서로가 강아지 옆에서 자겠다며 배게 싸움을 하곤 했다 개의 생일마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스케치북을 잘라 조그만 고깔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부모님은 간식 캔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주셨다 그리곤 그 개를 식탁 의자에 앉혀놓고는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한다고 사랑한다고 도그파크에 데리고 가곤 했다 개껌을 사주고 장난감을 사주고 방석을 사주었다 옷을 사주었다 개는 사랑받았다 개는 행복했다 고양이를 키웠다 개보다 먼저 있었던 고양이 두마리, 그들은 개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항상 개가 서열 꼴등이었다 그러던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고양이가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고양이가 왔다 귀엽고 조그만 아기 고양이 개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시간이 지났다 개는 늙어갔다 관심을 얻기 위해 돌발 행동을 하곤 했다 쓰레기를 뜯고 오줌을 아무데나 싸곤 했다 모두가 개를 싫어했다 골칫거리였다 한때 그렇게 사랑했던 개를 모두가 찬밥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잠에 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내일 보면 되겠지 내일 아침에 인사하면 되겠지 개의 열번째 생일을 잊어버렸다 아무도 고깔모자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아무도 캔 케이크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내년 생일이 있을 것이라 믿고 웃어 넘겼다 내년 생일을 챙겨주면 되잖아, 그러면 되겠지 개가 암에 걸렸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수험생인 나와 형에게 말했다 개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매주 산책을 나가라고 우리는 매우 귀찮아했다 마지못해 나갔고 이 핑계 저 핑계 대어가며 빼려고 했다 12월 17일 크리스마스를 보지 못하고 개는 죽었다 내년 생일은 오지 않았다 개는 이제 우리 집에 없다 핸드폰에 사진도 많이 없다 우리 집의 시간은 흘러간다 개는 이제 이 시간선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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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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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

26.04.11. 12:46

난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어 이해는 힘들지만 공감은 된다 힘내 이것밖에 해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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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작성자)

26.04.11. 12:52

아직 주변인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못했어 가끔 친구들이 개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데 죽은 지 다섯 달이 다 되어가는데 개가 죽었다고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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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

26.04.11. 12:58

하...나도 강아지 키우는데...나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겠지 사랑했던 만큼 잊는 것도 힘들거야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보내줘 그리고 그때 다시 일어나도 늦지 않아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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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

26.04.11. 12:59

글고 노래 하나 추천해줄게 Yuuri - Leo 일본 노래니까 가사 번역해서 한번 봐봐 좀 위로가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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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

26.04.11.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