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1982년, 대한민국에서 한국프로야구가 첫 개막전을 가졌을 무렵 이역만리 떨어진 남미에선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남미. 아르헨티나 옆 포클랜드 제도는 오래전부터 영국이 지배중이였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는 그냥 자기네 영토와 가깝다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고. 원래는 내외부가 다 꺼려해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휘어잡은 군부독재정권이 말 그대로 경제를 개박살을 내놓고 나선, 그시절 빵과 서커스적 사고로 경제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시도하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군부정권의 시선 돌리기는 78년도 FIFA 월드컵부터 시작된다. 온갖 방법을 써서 축구대표팀을 우승시켰지만. 축구에 미친 아르헨티나 국민들조차도 이따위 경제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불만이 가라앉지 않자 당시 군부정권의 대통령은 밖에서 적을 데려와 내부를 단결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각종 남미국가를 재끼고 영국의 포클랜드 제도가 선정된 거것.
지금이야 과거에 초강대국 반열이였던 영국에 깝싸는 것이 비현실적이라 생각되겠지만. 당시 영국은 미국과 소련에 비하여 이빨 빠진 호랑이로 생각되기도 하였거니와. 당대 초강대국 미국이 먼 거리에 있는 베트남에서 지리적인 불리함으로 삽질을 면치 못했다는 점과 해군 대형함모의 퇴역 +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나빠진 영국의 경제 상황등을 미루어 봐서. 꽤 해볼만 한 전쟁이였다.
그리고 1982년 2월 27일 정기회담을 끝으로 아르헨티나는 나름의 최후 통첩을 영국에 전달했지만, 영국은 그것이 무력 침공을 뜻하리라곤 꿈도 못 꾸었다. 그 상태로 3월 19일, 아르헨티나는 왠 고철 수집상을 포클랜드 동쪽 사우스조지아 섬에 보내면서 선박이 없다고 해군 함정에 태워다가 불법 상륙을 시켜놓고선 영국이 안쓴다며 공장의 해체권을 주장해버린다. 거기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올려버리는데. 이 광경을 본 영국의 남극 관책대원이 영국 본토에 보고하면서 외교적인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몇십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해 실제 군사적인 긴장감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해군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위시하여 4천명 가량의 병력을 포클랜드에 기습 상륙시켜버린다. 포클랜드를 지키던 영국의 해병코만도와 충돌 역시 압도적인 전력차로 눌러버리고 영국의 총독을 추방시켜놓고 그놈의 국기를 또 올려버린다.
당시 국제적으로 이빨이 빠져버린 영국의 위상과 대처 내각의 정치적 리스크, 꽤 현대화된 아르헨티나군의 전력 등. 영국이 외교적인 조치만 취할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였으나 이 사실이 영국에 알려지자...
(반응 좋..다면 다음편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