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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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작성자)
25.08.21. 10:57
5. 악몽을 꿨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침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조금 놀랐다. 어두컴컴한 거실에 선객이 있어서 그랬다. “안 자고 뭐하세요?” 테이블에 앉아있던 준미 아주머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혜 학생이구나. 학생도 잠이 안 와요?” “무서운 꿈을 꿨어요.” 대충 대답하면서 옆 자리에 앉았더니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 손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는 기분이다. 고마운 마음에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으엑.” 곧장 고개를 내리깔았다. 저 벽에 못박힌 여자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돼! 나는 퉁명스럽게 항의했다. “뭐 저런 걸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계세요.”
익명 1(작성자)
25.08.21. 10:57
자기 목숨으로 한 가족을 저주해버린 악독한 년. 그 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유독 충격적인 내용이라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 여자는 놀랍게도 저런 꼴을 하고서 살아있다고 한다. 박제된 몸에 영원히 갇힌 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요?” 내 질문에도 아주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내 손등을 쓸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작은 목소리를 내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주머니는 그 이후로도 하염없이, 박제된 여자를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익명 1(작성자)
25.08.21. 10:59
6. “나만 믿어.” 김 아저씨는 손가락이 두 개만 남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30초 짜리 방호복이라는 검은색 우비를 뒤집어 쓴 채였다. “내가 머리는 영 꽝이지만 몸 쓰는 건 자신 있거든. 이런 거라도 해야지.” 오히려 현관에서 그를 배웅하는 강민성이 더 안절부절하는 모양새였다. “아저씨. 저기 오두막 방향으로 오른팔을 쭉 뻗은 시체가 배영록씨에요.” “어. 보인다, 보여. 가깝네. 30초면 차고도 넘친다.” 호언장담한 김 아저씨는 무섭지도 않은 듯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 옆 창문에 달라붙었다. 눈보라를 뚫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아저씨가 보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일, 이, 삼. 구 정도 셌을 때 이미 아저씨는 기괴하게 비틀린 시체 앞에 도달했다. “그거 맞아요! 그거에요! 아저씨 그 근처 뒤져봐요!” 흥분한 강민성이 방방 뛰며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익명 1(작성자)
25.08.21. 10:59
휘날리는 눈가루 사이로 김아저씨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다. 새하얀 세상은 울타리에 매달린 전구가 뿜어내는 빛으로 알록달록 물들었다. 십삼. 십사. 십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김 아저씨의 색깔도 변했다. 한 번은 초록색으로, 한 번은 빨간색으로. 십육, 십칠. 초록색의 아저씨가 시체의 이곳 저곳을 더듬는다, 십팔, 십구. 빨간색의 아저씨가 다급히 뭔가를 소리치며 양팔을 엑스 자로 교차시킨다. 이십, 이십일. 귀가 먹먹했다. 바로 옆에서 강민성이 빨리 오라고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 탓이었다. 이십이, 이십삼. 초록색의 아저씨가 몸을 일으킨다. 빨간색의 아저씨가 이쪽을 보고 달린다. 초록색이 뛴다. 빨간색이 뛰고, 초록색이 뛰더니. 그러더니. 그러더니 빨간색은 벌러덩 넘어진다. 삼십오. 삼십육.
익명 1(작성자)
25.08.21.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