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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선지 국밥] 전환점 (feat. 잊음을 논함)

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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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03:50

[선지 국밥] 전환점 (feat. 잊음을 논함)

<전환점이란?> 오늘은 선지 이야기가 아닌 시와 수필의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오늘의 빌드업이 다음 칼럼의 주제인 ‘수단과 목적의 전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사람은 하고 싶은 말, 자기의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앞엔 빌드업만 엄청 쌓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낸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예시를 들어보자 “우리 전에 오목공원 놀러갔던 거 기억나? 그땐 되게 좋았었는데. 그리고 저번에 우리 여의도도 놀러갔었잖아. 그땐 우리 여기저기 같이 다니면서 되게 재밌었는데. 요새는 둘 다 바빠서 얼굴도 잘 못 보고.. 전이랑 비교해보면 요즘 우린 서로한테 집중할 시간이 부족한 거 같아 꼭 누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상황이 어쩔 수 없고 안타깝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그만할까..?”라는 글이 있으면 과거 회상하면서 추억여행하는 글인가? 뭐 그런 내용이 있긴 하다만 이게 지금 어딜 놀러가고 저길 놀러가고 이런 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결국 길게길게 말했지만 본질은 헤어지자는 것이다. 연애 이야기가 공감되지 않을 부엉이들을 위해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어느 겨울 늦은 밤. 나에게 갑작스레 연락해 포장마차에서 만나자는 친구.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어 안으로 들어가니 파란 테이블 위 홀로 안주도 없이 술만 따라 마시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안주도 없이 왜 술만 마시냐고 그러다 속 다 상한다는 내 말에 친구는 쓸쓸히 웃으며 포장마차 이런 곳은 안주도 비싸고 안주를 먹으면 술에 잘 안 취해서 술만 많이 먹게 된다고 답한다. 그리고 왜 갑자기 부른 거냐고 묻는 내 말에 답은 하지 않고 자신이 투자를 하게 된 이야기, 회사에서 투자를 하다가 상사에게 혼난 이야기, 결국 직장에서 해고 당한 일 등등을 말한다. 그리고 30분을 떠들다가 나지막하게 하는 말 한 마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냐..?” ‘그래서 말인데?’ 그렇다. 지금까지의 모든 말들은 결국 돈을 빌려달라 하는 말을 하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한 것이다. 안주 값을 낼 돈도 없고, 이 현실을 벗어나려 빨리 취하고 싶은데 안주를 먹으면 술을 많이 마셔야 취할 수 있으니, 술값이 많이 드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 내가 포장마차에 들어와 그와 한 대화의 시작부터 그 빌드업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친구와 술 먹는 이야기? 친구의 해고 이야기? 물론 틀리진 않지만, 가장 적절한 요약은 ‘친구가 나한테 돈 빌려 달라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30분의 대화 속에서 가장 핵심은 결국 말하는 데 10초 남짓인 돈 빌려달라는 한 문장일 것이다. 문학은 일상어이다. 문학에서도 이런 인간의 특성을 바탕으로 하고싶은 말, 의도, 맥락, 컨텍스트를 잡아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과 같다. 상대의 본심을 알아내기 위해 상대의 마음 깊숙이 창을 찔러넣으려는 자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기 부담스러워 침묵과 빌드업이라는 방패로 막고 있는 자의 대결이다. 초반부터 상대에게 창을 찔러넣으면 상대의 방어만 거세진다.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상대가 시간이 지나 경계와 긴장이 풀려 방패를 느슨히 잡고 스스로 약점을 드러낼 때까지. 수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내는 형식의 글인 만큼, 초반엔 나도 긴장을 풀고 스스로 상대가 본심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 <예시>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수능 역사상 최악의 난이도 수필, ‘잊음을 논함’을 읽어보도록 하자. 일단 내가 이홍이란 양반이랑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군. 근데 새끼 왜 자꾸 답답하게 말을 빙빙 돌리지? 싶다. 솔직히 2~9줄은 싹 다 ‘context를 드러내기 위해 쓴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context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가보자. 다음 줄 바로 context가 나왔다. ‘잊어야할 것과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잘 구분하자’라는 내용의 수필이고, 지금까지 잊는 것이 병이니 어쩌니 이런 것들은 싹 다 context를 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대강 context를 잡았고 쭉쭉쭉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 끝까지 읽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어야 할 건 “아~ 지금 이 아저씨가 잊어야할 것과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잘 구분하자는 거고 이게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바꿀 능력이 있단 거랑 똑같은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뿐이다. 잊는 것이 병이니 어쩌니 이딴 건 머릿속에서 싹 날려버려도 된다. [25번] 굳이 지문으로 안 돌아가고 선지만 읽어봐도 답이 보인다. #1번: 당연히 모든 말들이 잊음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한 거겠지. #2번: 어쨌든 나의 이런 잊음에 대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즉 context를 제시하기 위한 물음이냐는 것이다. (설마 수능 문제가 물음이냐 평서문이냐 이딴 걸로 낚시하겠냐고...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쭉쭉 읽어나가보자) #3번: 이거는 지문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쭉쭉 읽어보자. #4번: 일단 잊어야할 것과 잊지 말아야할 것을 대비해서 context 말하는 게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니까 물론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겠다만 일단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는 거 같음. #5번: 일단 당연히 이 글 자체가 지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쓴 글이 아닐까? 뭐 자기 성찰 이런 내용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것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쓰고 있는 거 아닐까? 앞에 주저리주저리 열거했는지만 확인해보자. 3번부터 5번까지 지문이랑 비교해볼 생각으로 돌아가면 3번에서부터 걸려버린다. [28번] #5번: 이런 게 전형적인 ‘수단과 목적의 전이’ 선지이다. 분명 ‘잊는 것이 병이니 어쩌니’ 이딴 내용은 context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거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만약 이 선지가 ‘잊는 것이 병’이라고 했든 아니라고 했든 다 틀려먹은 것이다. 다음 칼럼에선 ‘수단과 목적의 전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 것이고, 여담으로 이런 성격을 가지는 선지가 영어 (260931)의 2번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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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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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

26.04.14. 03:50

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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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

26.04.14. 03:51

작수 문학 몇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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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

26.04.14. 03:51

문학은일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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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4(작성자)

26.04.14. 03:54

익2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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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4(작성자)

26.04.14. 0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