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선에 접속해 흔적을 남기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위안이던 시절이 있었다. 수험생들이 모여 서로의 고립을 확인하는 커뮤니티 게시글만큼 공허한 표현의 욕구로 넘쳐나는 것도 없다. 책상 앞의 정적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도피하듯 모선을 찾는다. 그는 모선의 익명들 뒤에 숨어 자신의 수험 생활이 얼마나 비장하며, 이 반복되는 고통이 얼마나 특별한 운명인가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게시판의 글은 타인의 인정을 받거나 값싼 위로를 얻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모든 글쓰기는 최후의 순간 철저히 무력하다. 모든 기록이 그러하듯, 글쓰기의 끝에는 처음에 품었던 정보 공유나 공감이라는 명분을 배반하는, 그저 자아를 확인받고 싶다는 지독한 욕구만이 남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선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에는 정작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 거기에는 실질적인 학습법도, 입시의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 불안을 불특정 다수가 지켜보고 있다는 기묘한 안도감, 모니터의 시퍼런 빛 아래서 스스로의 밑바닥을 드러낼 때 느껴지는 서늘한 해방감뿐이다. 고백이란 결국 커뮤니티라는 허상을 경유하여 다시 1인칭의 비루함으로 돌아온다. 그의 들끓는 문장들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향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한동안 그는 모선의 게시판에 자신의 성실함을 가장한 일상을 자주 전시했다. 사람들은 그의 글에 반응했다. 정확히 말하면 글 속에서 정교하게 가공된 ‘비극적 주인공인 그’를 소비했다.
그 글 속에는 그가 빚어낸,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자아가 있었다. 그 자아는 꺾이지 않는 의지와 고결한 열정을 가진, 지독하게 이상적인 허상이었다. 그 역시 타인들처럼 자신의 글 속에 사는 1인칭 화자에게 깊이 매몰되었다. 하지만 도망칠 곳 없는 지리멸렬한 정체의 시간 속에서, 그는 글 속의 찬란했던 자아를 잃어버렸다. 접속할 기력조차 없는 무력한 침체기가 지나고 다시 모선을 기웃거릴 때, 그는 이미 ‘글 속의 그’를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예전처럼 고상한 척 글을 써 내려가는 행위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뼛속 깊이 실감했다. 그는 모선에 여전히 특별한 수험생인 척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자신 안의 옅은 갈망을, 그 가련한 인격을 이제는 외면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는 모든 고백이란, 결국 정교한 위선이 아니면 서글픈 위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