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황해도의 큰 고을에서 넘어와서
외진 산간 지역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중이었다.
험준하고 깎아지를 듯한 산세를 구비구비 넘어
사람의 기척이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음산한
산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어느덧 보부상 생활도 20여년에 접어든 나에게
이런 경우는 종종 있어왔기에, 자신을 다독이며
발걸음을 바삐 재촉할 따름이었다.
이윽고 첩첩산중 안에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해시(亥時)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임에도 마을에는 밝은 불이 곳곳에 켜져 있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동구밖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안심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마을은 무언가 축제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였다.
형형색색의 천이 이곳저곳에 수놓아져 걸려 있고
연등에 환하게 촛불을 넣어 곳곳을 밝힌 거리마다
흰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겨운 잔치판을 벌여놓은 모양새다.
모두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고 개중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마을 공터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상을 차려놓고 식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모는 오는 이들에게 밥 3그릇, 국 3그릇, 막걸리 3잔씩
넉넉하게 상차림을 내어 왔고, 마침 목이 컬컬하던 나도
자리에 앉아서 주모에게 한 상 청했다.
내 몫으로 들려 온 밥 3그릇, 국 3그릇, 막걸리 3잔.
오랜 여행길에 허기져있던 나는 더운 밥을 한술 가득 퍼서
뜨끈한 국물에 말아서 허겁지겁 먹고는 연거푸 막걸리도 함께 마셨다.
몸 속이 든든하고 따뜻하게 차오르는 기분에 맥이 풀려
주변을 돌아본 나는 문득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등골이 서늘해졌고, 한시라도 빨리 이 곳을
떠야겠다는 일념하에 자리를 박차고 정신없이 마을 밖을
향해서 달음박질을 치며 그 어느때보다도 빨리 내달렸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을 사람들은 그런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서로 즐겁게 이야기 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춤을 출 따름이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이 노려보는 눈매가 오늘따라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진다.. 서둘로 마을을 떠난 나는
정신없이 어둠이 깔린 산길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달도 구름이 꼈는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더듬어갔지만, 마음 속은 오히려 차분해졌고 어떻게든
이 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한참을 헤메며 산길을 더듬어 갔을까?
어느덧 수풀 사이로 무언가가 바삐 움직이는 모양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살펴보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앞섬을 풀어헤치고 머리는 산발이 된 아녀자가
이 야밤에 혼자서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게 아닌가?
필시 미친 사람이거나 귀신임이 틀림 없다고 판단한 나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도망쳤고, 냉정히 주변을 둘러보니
첩첩산중의 심연까지 제 발로 걸어들어온 양
주변에는 그 어떤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고 어둠과
우거진 수목만이 만근과도 같은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듯 했다.
차라리 흉포한 산군이나 승냥이 같은 산짐승들의 굶주린
울음소리라도 난다면 그 쪽이 더욱 반갑지 않을까?
지독하디 지독한 어둠과 침묵 속에서 방치된 나는
퍼뜩 예전에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 아마 1개월 전인가 ... 평양의 어느 마을에 들렀을 때
푸닥거리를 하던 무당이 사람들과 하던 이야기를 지나가는 길에
얼핏 들었었지 ...
"귀신이라 함은. 있어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 채
원통함을 품어, 본디 음(陰)의 기운이 강한 것들이오."
"그런 귀신들 중에서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귀신이 2가지
있는데, 첫째. 웃는 귀신. 둘째. 춤추는 귀신이라네."
"어째서 웃고 춤추는 놈들을 가장 조심해야 하는게요?"
"아까도 말했지만, 귀신이 음(陰)의 기운을 품었다 했지?
이런 음습한 본성을 가진 것들이 째지게 웃거나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기쁠 일이 뭘 거 같소?"
" 어 ... 허어 ... 글쎄올시다?"
"모르긴 몰라도 그 녀석들이 기뻐하는 일이
사람에게 결코 득이 될 일은 아니라는게지..
원 .. 그리 눈치가 없어서야 ... "
"아무튼 이런 놈들을 만난다면 재수 옴 붙었다고 할 수 있소.
보통 이 놈들의 모습을 목격한 시점에서는 그네들의 뒤틀린
소망을 이루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나 마찬가지일테고..
그리고 ... 만약 그것들과 밀접하게 접촉까지 했다면 ...."
.
.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미친듯한 웃음 소리들로
가득 메워진 어둠 속에서
나의 짧은 회상은 갈무리되고, 이내 ... 다가오는 현실을
직시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그래 나는...."